
유랑
최수연 (지은이) | 여행하는나무 | 2015-06-08
양장본 | 176쪽 | 240*175mm | 264g | ISBN : 9791195544608
정가 : 26,000원
















































































책소개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생명과 삶의 시원(始原)을 찾아 사진 유랑을 해온 사진가 최수연의 세 번째 사진책 <유랑>. 20년 가까이 농민신문사가 펴내는 생활 잡지 사진기자로 일하고 있는 그가 직업 특성상 우리 땅 곳곳을 유랑하며 만난 사람과 자연, 그리고 그들이 어우러진 삶과 그 삶이 빚어낸 사물들을 기록한 사진에세이다.
<유랑>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서 손을 흔드는 촌부, 겨울 자작나무 숲, 지난 여름 미처 수확하지 못하고 버려진 옥수수, 짧은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 등 우리 땅, 우리의 삶을 향한 사진가 최수연의 고유하면서도 다양한 시선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총 90장의 사진과 짧은 유랑기를 함께 싣고 있다.
목차
나 홀로 길을 걷네 18
시간의 기억 32
기다림 48
짧은 만남 64
시간 여행 80
봄날 88
흘러가는 시간 100
여행하는 나무 146
그리움 160
책속에서
사물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것이 몸에 배었다. 사물과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이 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 때 조금 더 사물을 본질에 가깝게 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다가설 엄두도 나지 않았다. 때론 가까이 다가서야만 할 때가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편이다.
사진이 찍혔다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 시간을 기억하게 되었다.
- 본문 중에서
사진은 기록이다. 당연한 소리다. 어찌나 당연한지 이제는 그 말을 잘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진가 최수연의 사진을 보면 ‘사진은 기록’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이 명제가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그의 전작 <논, 밥 한 그릇의 시원(始原)>이 그랬고, <땅과 사람을 이어주던 생명, 소> 또한 그러했다. 그리고 이번 책 <유랑>이 그럴 것이다.
밥이 꼭 밥인 것만은 아닌 시대가 되었고, 논 마지기가 더 이상 살림살이를 대변하지 않는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더불어 소가 생산품이 아니라 생산의 주체였던 시절은 머지않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가 되고 말 것이다. 그나마 그 시대와 시절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가 남아 있을 때 그는 그 기록들을 모아 꾸준히 책으로 펴내왔다. 시간을 이기는 사진을 찍으려 했던 치기 어린 풋내기 사진가에게도 사진이 찍혔다는 것이 더 중요해진 시점이 왔고, 그 시점에서 그는 시간을 기록하는, 아니 기억하는 것의 의미를 스스로 찾았던 것이다.
최수연의 전작들이 그러하듯 새 책 <유랑> 또한 15년 이상의 시간에 걸쳐진 이 땅에 대한 기록이며, 기억이다. 20세기 말과 21세기를 넘나들고 있으며,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한다. 기록은 그 혼자 했지만 기억은 우리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가 직업으로 삼았던 일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라고 가벼이 평가한다면이야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모름지기 상황은 탓하기는 쉬워도 덕 보기란 어렵지 않던가. 직업적 특성상 끊임없이 이어갈 수 있었던 20여 년의 유랑이 유의미한 기록이 되고, 기억과 역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최수연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한때, 아니 어쩌면 여전히 시간을 이기는 사진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무모한 치기가 있었기에 말이다.
한 인간이 사진으로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못하다. 한 백 년쯤 될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따져보니 고작해야 몇 십 년에 불과하다. 백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인간의 수명과 무관하게 그 이상은 유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과 풍경을 보고, 느끼고, 공감하는 가운데 찍힌 사진을 모아 또 다시 한 권의 책으로 엮는다.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유랑하듯 돌아다니며 바라본 작은 기록도 쌓이고 보니 꽤나 방대해졌다. 개인적으로 사진을 위한 유랑이었는지, 유랑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는지 혼동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유랑하고 싶었던 내 본래의 욕망이 이 사진을 세상에 내놓고 싶어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시절이, 그리고 이런 장소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한 사진이 되었으니 이쯤에서 내 욕망에도 의미를 두기로 한다.
- 본문 중에서
멈춰진 것보다는 흐르는 것에 먼저 시선을 주는 최수연의 카메라가 사라져가는 모든 것을 놓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미처 수확하지 못한 농작물이 버려진 밭, 빈 논, 도착과 출발이 교차하는 기차역 대합실에서의 잠시 유예된 시간, 어디론가 향하는 촌노들의 구부정한 뒷모습...
생명체와 사물의 생성과 소멸도 큰 의미에서는 흐름이고, 그 흐름 또한 유랑이 아니겠는가. 물론 삶도 마찬가지.
이 땅과 이 땅 위의 모든 존재의 흐름을 좇는 사진가 최수연의 유랑은, 그래서 우리 모두의 유랑이다.